Obsession 후기 :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
카리나가 당신이 없으면 죽어버리겠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Obsession〉 은 1999년생, 뉴욕필름아카데미 출신 Curry Barker의 두 번째 영화이자, 첫 스크린 데뷔작 중 하나입니다. 애초에 본인이 운영하던 스킷 채널 ‘thats.a.bad.idea’ 도 유쾌상쾌한 코미디보다는 어딘가 조금 불쾌한 다크 유머를 유지하던 채널이었는데, 이번 작품도 딱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매우 어둡고, 매우 음침하고, 보고 나면 기가 꽤 빨리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바론, 일명 ‘베어’ 베일리 의 시선으로 흘러갑니다. 바론, 니키, 이안, 세라는 같은 음악 스토어에서 일하는 동료이고, 바론은 니키를 좋아합니다. 문제는 그걸 니키를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겁니다. 영화 초반부에서 바론은 니키에게 고백하려고 계속 타이밍을 보지만 결국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니키가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사다주는, 흔히 말하는 어항 속 물고기 같은 존재로 나옵니다.
그러다 바론은 니키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갔다가 ‘One Wish Willow’ 라는 장난감을 사게 됩니다. 한 사람이 한 번, 부러뜨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물건입니다. 그리고 결국 바론은 그걸 부러뜨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I wish Nikki Freeman loved me more than anyone in the fucking world.
니키 프리먼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이 순간부터 영화는 180도 바뀝니다. 원래 니키는 바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과하게 말하면 바론을 거의 혐오하는 수준이었고, 오히려 바론이 고백하려는 분위기가 생기면 “절대 하지 마라”는 식의 공기를 풍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소원 이후, 니키는 갑자기 바론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애정결핍이 심한 여자친구, 혹은 불안형 애착이 강한 캐릭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정도가 아닙니다. 니키는 바론이 자기 시야에서 한 발짝이라도 벗어나려고 하면 말 그대로 무너집니다. 바론에게 가지 말라고 매달리고, 소리치고, 점점 사랑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감정처럼 변해갑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화를 직접 보시면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영화가 좋았던 점은, 무엇보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요즘 한국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 잡소리가 너무 많습니다. 최근 100만 관객을 기록한 〈와일드씽〉 만 보더라도 강동원이 과거에 뭘 했는지, 트라이앵글 멤버들이 각각 과거에 뭘 했고 지금은 어떤지, 이런 이야기를 길게 붙이며 부피를 키웁니다. 그런데 〈Obsession〉 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넓히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그냥 “짝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신비로운 장난감 ‘원 위시 윌로우’를 부러뜨린 구제불능의 로맨티스트가, 자신이 바라던 것을 정확히 얻은 뒤 그 욕망의 대가를 깨닫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설정은 단순하고, 곁가지도 많지 않고, 떡밥을 과하게 뿌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습니다. 괜히 세계관을 넓히거나 설명을 늘어놓지 않고, 한 가지 감정과 한 가지 저주를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무엇보다 니키 프리먼을 연기한 다니엘 파비올라 네버레티 의 연기가 정말 좋습니다. 거의 〈악마를 보았다〉 의 최민식 연기를 볼 때처럼, 사람이 감정 하나에 완전히 잡아먹힌 느낌을 줍니다. 유명한 출신도 아니고, 여기저기 단역을 하던 배우였고, 〈Obsession〉 성공 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주변 강아지를 산책시켜주거나 스트리밍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집착 연기는 진짜 차기작이 기대될 정도입니다.

니키는 단순한 멘헤라나 얀데레 캐릭터가 아닙니다. 귀엽게 포장된 집착녀도 아닙니다. 바론을 사랑한다는 감정 자체는 분명히 있는데, 그 사랑이 너무 비틀려 있어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랑보다 공포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제키와이식 멘헤라 스타일을 넘어, 진짜 정신병원의 케이스 스터디로 배워도 될 정도의 광기를 보여줍니다. 눈빛, 호흡, 표정, 몸의 긴장감이 전부 불안하게 흔들리는데, 그게 이 영화의 분위기를 거의 혼자 끌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성공은 요즘 관객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꽤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와 2010년대에는 마블 히어로 영화처럼, 우리가 현실에서 절대 체험할 수 없는 거대한 장르들이 박스오피스를 크게 가져갔습니다. 우주를 구하고, 멀티버스를 넘나들고, 도시가 무너지고, 초인들이 싸우는 일종의 놀이동산 같은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강한 판타지를 줬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조금 다른 종류의 공포와 쾌감이 먹히는 것 같습니다. 〈백룸〉 같은 작품만 봐도 그렇습니다. 예전 같으면 거대한 괴물이나 대형 세트, 세계관을 앞세운 공포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인터넷에서 이미 알고 있던 불쾌한 감각, 텅 빈 공간, 낯익은데 이상하게 뒤틀린 장소,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 같은 것들이 영화의 중심이 됩니다. 엄청나게 멀리 있는 판타지가 아니라, 이상하게 내가 이미 본 것 같고, 나도 겪을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이 공포가 되는 겁니다.
〈Obsession〉 도 그런 흐름에 가까운 영화라고 봅니다. 이 영화는 히어로 영화처럼 우리가 절대 볼 수 없는 세계를 보여주는 대신, 주변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심각한 커플, 선을 넘은 집착,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옥죄는 관계를 호러로 끌고 옵니다. 어쩌면 요즘 관객에게는 귀신이나 괴물보다, 연락이 안 되면 죽을 것처럼 구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지점을 정확히 건드립니다.
그래서 단 75만 달러의 예산으로 전 세계 7,400만 달러를 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무언가를 크게 보여준 영화라기보다는, 관객들이 이미 알고 있는 불쾌한 감정을 정확히 잡아낸 영화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못 가는 우주보다, 내가 이미 겪어본 인간관계의 지옥이 더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Obsession〉 은 그걸 아주 작고 음침한 방식으로 잘 파고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젊은 감독들의 데뷔 호러 영화들이 꽤 좋은 결과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은 영화 팬으로서 반갑습니다. 거대한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나온 정제된 호러가 아니라, 유튜브, 스킷, 숏폼, 인터넷 문화의 감각을 먹고 자란 창작자들이 자기 방식으로 공포를 만들기 시작한 느낌입니다. 〈Obsession〉 은 완벽한 영화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는 정확히 아는 영화입니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을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그걸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래서 꽤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물론 보면 볼수록 기가 빨립니다. 정말로요.
그래도 9월에 한국에서 개봉하면, 영화관에서 한 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사랑은 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소원은, 이뤄지는 순간부터 저주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