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데미안 허스트의 최초 아시아 전시라는 점부터 이미 가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다만 모든 전시가 그렇듯, 배경 지식이 없으면 10분 스피드런으로 훌쩍 보고 나오기 십상입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전시를 제대로 즐기며 볼 수 있는 안내서를 작성해 봅니다.
3 전시실 —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 : 전시의 시작

전시의 시작은 지하 1층의 〈죽은 사람의 머리와 함께〉라는 작품입니다.
사진 속 데미안 허스트는 고작 16살. 악동처럼 웃고 있는 그의 옆에는 분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시신 안치소에 보관된 잘린 시신의 머리가 놓여 있습니다. 16살의 데미안은 친구에게 부탁해 이 사진을 찍고 잘 간직하다가, 10년 뒤 자신의 첫 개인전에서 공개했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철없는 장난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은 그의 예술 세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훗날 '상어 작품'으로 알려진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비롯해 '약국' 같은 작품들까지, 이 사진을 찍던 순간이야말로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를 향한 그의 예술 세계가 출발한 지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옆에는 〈콜라주 시리즈〉 가 이어집니다. 단순한 '화가'가 아닌, 소품 활용 능력을 가진 작가로서의 데미안 허스트를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골드스미스 대학 입학을 준비하던 시절, 야망과 열정이 넘쳐 오히려 어떤 그림을 그릴지 막힐 정도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 돌파구가 된 것이 바로 콜라주 작업이었습니다. 계기는 이렇습니다. 당시 런던 옆 건물에 살던 '반스'라는 노인이 요양 시설로 옮겨지면서, 평생 주워 모은 물건들로 천장까지 가득 찬 집이 비워졌습니다. 허스트는 그 재료들을 가져다 재배열해, 텅 빈 캔버스 위에 누구보다빠르게남들과는다르게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냈습니다.
4 전시실 —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 이것만 봐도 반은 봤다! (진심)

데미안 허스트를 몰라도, 그의 작품은 아는 바로 그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입니다.
3 전시실의 첫 작품을 기억하시나요? 그 작품처럼, 허스트는 이번에도 어부에게 길이 4미터가 넘는, 누가 봐도 잡아먹힐 것 같은 크기의 상어를 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단순히 〈죠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작품 앞에 섰을 때 죽음의 공포를 실체로서 직접 마주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91년, 유리 탱크와 20톤이 넘는 포름알데히드 용액, 그리고 상어가 함께 들어간 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흥미로운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보존 처리에 문제가 생겨 상어가 썩기 시작했는데, 이것조차 "현대 의학으로도 '죽음'은 물리적으로 멈출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해석을 낳으며, 2006년 상어가 한 차례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통해, 무려 13년 만에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꼭 앞에 서서 한번 지켜보세요. 과연 이 작품도 끝내 '죽음'을 버텨낼 수 있을지!
5 전시실 — 침묵의 사치 : 죽음과 인간의 상관관계
밖으로 나와 5 전시실로 향하면,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 펼쳐집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가톨릭 집안의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 앞에서 사진을 찍던 그가, 이번엔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준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첫 작품은 약품 시리즈 〈The Circle for Infinity〉입니다. 어린 시절, 폐암에 걸린 할머니가 약에 의존하며 마치 신처럼 믿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약장에 남겨진 약들을 보며, 허스트는 "우리는 약이 모든 병을 고치고 생명을 보존해 줄 것이라 믿는 현대의 신앙"을 작품 속에 담았습니다. 약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상당히 정교합니다. 약품에 각별한 애착을 가진 허스트의 관련 작품 〈Lullaby Spring〉은 무려 970만 파운드에 판매된 기록도 있습니다.

반대편 어두운 곳에는 〈신의 사랑을 위하여〉, 누군가의 두개골이 놓여 있습니다.
2007년에 공개된 이 작품은 18세기에 실존했던 인물의 두개골로, 주변에는 8,601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고 틀은 백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빨은 원형 그대로입니다. 실제로 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두개골이라는 소재가 주는 잔혹함과 허무함을, 허스트는 정반대로 비틀어 죽음을 찬란하고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마치 신에게 바치는 사랑의 선물처럼.

그 뒤에는 멀리서 보면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는 작품,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 가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수천 마리 나비의 날개로 만들어졌음을 알게 됩니다. 아름다움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는, 역설의 작품입니다.
서양에서 나비는 인간의 영혼과 부활을 상징해 왔습니다. 허스트의 최신 시리즈 〈The Empresses〉에서도 나비가 꾸준히 등장할 만큼, 그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나비 날개를 기하학적으로 배열하고, 고광택 페인트 '리폴린'으로 입체감을 더했습니다. 죽은 나비가 죽음 이후에도 '삶'을 만들어낸 것처럼, 허스트가 생각하는 죽음 너머에 남겨지는 미적 가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약국
데미안 허스트는 순수하게 예술만을 추구하는 작가가 아닙니다.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예술가입니다. 정말로 돈을 많이 번 사람입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그냥 동네 약국인데, 조금 힙한 버전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안에 있는 약들 중 일부는 한국 제품입니다. 하지만 이 공간의 모든 인테리어와 미학은, 1998년 런던 노팅힐게이트에서 실제로 문을 열었던 레스토랑 '약국'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5 전시실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허스트는 이 식당을 5년간 직접 운영했습니다. '망한' 것이 아닙니다. 문을 닫을 때 내부 소품들을 작품으로 판매해 무려 1,100만 파운드를 거둬들였고, 이후 갤러리 설치 공간과 시장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었습니다.
약국을 끝으로, 쿠키룸을 제외한 전시가 마무리됩니다.
데미안 허스트, 참 재밌는 인물입니다. 이웃집 노인의 쓰레기로 콜라주를 만들던 청년이, 1,400만 파운드짜리 다이아몬드 해골을 만드는 작가가 됩니다. 그래도 60세가 된 지금까지 그의 철학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본이 많아도, 능력이 뛰어나도, 과학적으로 아무리 통제해도 '죽음'이라는 종착역은 피할 수 없다는 것.
그 '죽음' 앞에서 데미안 허스트가 남긴 말로 글을 마칩니다.
"예술은 약과 같다.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의학을 믿으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늘 놀랍다.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지 않은 채 말이다."
*추가로 2층으로 올라가시면 데미안 허스트의 런던 스튜디오로 디자인된 방과, 아직 마무리가 안된 새로운 작품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안내서를 제외하고, MMCA 오디오 가이드만 해도 21개의 가이드가 준비가 되어있으며, 전시의 극히 일부만 리뷰를 한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진행이 되며, 현장에서 예매가 가능하지만, 대기가 매우 길며, 매주 월요일 6시마다 일주일 단위로 티켓이 판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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