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뭐 퇴사했습니다.
3년 반 동안 열심히 일했으며, 울기도, 웃기도 한 회사 생활을 리캡 하고자 글을 씁니다.
길어요, 한것도 많았거든요.
1. 이전 : 덱스터 입사까지
저는 영화에 조기교육? 을 받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거의 7살이였나? 그때 부모님은 '좋은 영화는 좋은 교육이다'라는 신념 아래에 영화를 매주 토요일마다 보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제 취향에 맞게 보여주진 않았으며, 당시에 올드보이 / 트랜스포머 / X-Men 등 아버지의 취향도 많이 들어가며, 명작인 로미오와 줄리엣 이런 고전 영화도 많이 보긴 했습니다. 정상은 아니었죠.
그러다 보니 남들은 쥬니버네이버에서 동물농장을 할 당시, 저는 영화에 빠져있었으며 중국이라는 오지에 나라를 갔어도 매해 한국엔 어떤 영화가 나오는지 보곤 했으며,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에 빠지곤 했습니다. 랩도 했으며, 진지하게 임하면서 가사를 쓰고, 공연장에서 공연도 해보고,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공안에 잡혀 도망간적도 있었습니다.
대학에 갈 시간이 왔습니다. 저도 아시아인의 피가 흘려 '과연 내가 예술을 하면서 밥을 먹고 살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지만, 예술의 재미를 못 놓아서 수능도 (SAT도) 안 본 체 미국의 Community College를 갑니다. 전공은 경영학 (그런데 컴퓨터를 곁들인)으로 갔고 한 학기를 공부했습니다. 올 A+을 맞아도, 본성은 못 버려 결국 빠른 자퇴와 함께 영화학을 전공하러 갔습니다. 이왕 한번 사는 거 그냥 내가 하고 싶은걸 해도 짧은 인생이라고 생각이 들어 영화를 공부했습니다.
대학은 재밌었습니다. 싸우는거 조차도 저한텐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졸업할 시기에 하필이면..
아, 하필이면 기생충을 봐버립니다. 그냥 보지도 못했어요, 하필이면 봉준호 감독님이 제가 사는 지역까지 와서 같이 시사회를 봤으며, 거기에 하필이면 봉준호 감독님의 무료 QnA 세션까지 참석하게 됩니다. 영화는 아직도 제 기준에 마스터피스며, 제 인생에 큰 결정인 한국으로 돌아오는 거로 결정합니다. 당시에는 '한국 영화가 이정도 수준까지 올라왔다면, 이젠 ATH을 찍을 수밖에 없는 거다'라는 생각에 총 15년의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걸 결정합니다. 저런 영화 회사를 만든 회사면, 제 인생에 일부분을 투자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뭐 그리고 한국을 들어옵니다.
아무도 없었어요, 가족도 외국에, 형도 외국에, 도움을 줄 사람 한명 없었지만,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중국어까지 하면 취업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아, 코로나가 터집니다. 제 언어 능력을 넘어서 지구가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에 기록이 될 만큼 진짜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콧대 높았던 저는 뭐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있는 곳 없는 곳 다 지원을 합니다.
그렇게 합격 소식을 잘 못듣던 시기에, 딱 하나 국내 유일 배구 콘텐츠를 제작하던 미디어 회사, A 미디어를 취직을 합니다.
좋은 회사였지만, 돈을 잘 못 벌던 회사였지만, 첫 사회생활의 시작을 시켜준 회사였으며, 끝은 안 좋았지만, 그래도 매번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아직도 연락하고, 잘 지냅니다.
끝이 안좋았다 보니, 다음 회사를 꼭 '절대로' 망하지 않는 회사를 가야지 라는 마인드로 서울대학교 PD로 입사를 합니다. 안정적이었지만, 영화 예술을 좋아하던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뭘 찍어도 제 포트폴리오를 넘어서 재미가 너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덜컥, 서울대학교를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덱스터 스튜디오 VFX 코디네이터로 합격을 합니다.
졸업을 하고, 한국을 들어온지 1년 반 만에, 제가 원하던 목표와 꿈이었던 한국 최고의 VFX 회사인 덱스터에 일원이 되었습니다.
2. 입사 : 코디네이터 입사 후
2021년 7월 1일,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에 입사를 합니다.
꿈에 그리던 영화 회사에 입사를 했으며, 제 인생을 바꿨던 기생충의 VFX, 그리고 만든다면 언제나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준 회사였으며, 어린 시절 저에게 큰 책갈피 같은 역할을 해준 회사에 일원이 된 것이 무척 기뻤습니다. 당황보다, 재밌는 게임을 구매한 어린이의 심정으로 정말 재밌는 회사생활이겠지 하면서 입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 들은 달랐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만들었던 유튜브 MP4와 다르게 이 회사는 매 프레임마다, 거기에 입사하고 처음 들어본 'EXR' 포멧과 단순하게 합성으로 끝내는 게 아닌 '애니메이션' 파트, '어셋' 파트, '라이팅' 파트 등으로 영상이 이렇게 세분화된 걸 입사하고 처음 배웁니다. 영화를 공부하며 기껏 프리 프로덕션 -> 프로덕션 -> 포스트 프로덕션 까진 알았지만, 포스트 안에선 이렇게 디테일 한건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도 배웠습니다. 뭐 어쩌겠어요? 첫 해는 혼나면서 매번 배운 거 같았습니다. (당시 같은 팀이었던 팀장님과, 제 사수들에게 감사와 죄송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ㅎㅎ)
그런데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가 생각보다 사람들에 문화생활에 일부분에서 낙오되곤 했습니다.
참여했던 영화는 제가 도움은 커녕 피해만 줄 정도로 전문가들이 모여서 좋은 작품을 개봉을 해도,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제 어린 시절 봤던 영화와 비교했을 때 턱 없이 낮은 상업적 성공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이게 회사에 큰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저희는 VFX를 만드는 회사지, 영화를 제작한 영화는 손해는 없으며 신기할 정도로 상업적 성공을 보여줬지만.. 저도 제 이름이 나오는 영화가 다른 사람 SNS에 올라오는 게 한 번쯤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제 이름이 여기저기서 나온 이후, 문뜩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영화의 수익은 영화 자체에 결과물 말고 다른건 없을까?
그렇잖아요. 저희가 음식점도 아닌데, 왜 영화만 만들까요? 다른건 못할까?
(주)덱스터스튜디오는 영화 콘텐츠 제작을 담당하는 (주)덱스터필름, Pre-Production 및 3D Stereoscopic 등 콘텐츠 제작의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주)덱스터워크숍과 함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R&D와 VFX 기술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시각효과 스튜디오의 새로운 모델을 완성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입니다.
회사 소개서에서는 라고 뭘 많이 하는거 같지만, 결국엔 저희는 '영화'라는 하나의 결과물에 의존을 한다는 게 과연 지금 시대에 맞을까?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며 이것저것 많이 해봤습니다. 처음에 시도를 해본 건 Web3, 즉 메타버스 관련된 외부 활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정승오'라는 이름보다 'jungbtc'라는 이름으로 활동도 해봤고, 잃을 수 있는 돈도 다 잃어봤습니다. 단순 돈 보다 Web3 보다 해당 사업 부분을 우리 회사에 넣는다면 어떨까?라는 마인드로 했었습니다.
단순한 PFP 사진을 넘어서 처음에 생각한 부분은 디지털 아트의 한 부분을 참여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전 퇴사를 한 지금 시점에서도 덱스터 스튜디오만큼 VFX를 잘하는 회사는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사표를 낸 상황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디지털로 된 그림을 잘 만드는 회사에서 아트를 제작한다면 큰 역사를 쓸 수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NFT의 초기 멘탈리티처럼, 로열티도 지속적으로 제작한 작업자에게 계속 제공이 된다면 단순 VFX 작업회사에서, 아티스트를 제작하는 회사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름도 있었습니다, projectDMC (Dexter Metaverse Club)으로 할까 했습니다.
문젠 루나 사태가 터지면서 NFT는 금기시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투자한 NFT도 이렇게 조진 상황에서, 회사에서 제안을 한다? 미친 소리였죠.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할려고 하던 시기에 여기저기서 뜨는 미드저니라는 툴을 발견합니다. 별거 아닌데, 텍스트를 치면 구린 이미지를 생성해 준다는 신기술이었죠. 그런데, 텍스트를 길게, 더 디테일하게 치면 이미지가 더 디테일해집니다. 그 이후 마지막으로 '필리핀 블록체인 위크' 연사로 초청을 받아 'AI와 블록체인이 영화업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라는 토픽으로 연사를 합니다.
당시에는 뭐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당시에 '미드저니' 라는 툴을 잘만 사용한다면 짧게 봐도 회사 레퍼런스 제작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근거로 AI와 블록체인의 발전 => 영화 제작은 1. 더 큰 작업량 2. 더 빠른 작업속도를 맞이할 시기가 올 거다라는 연사를 진행한 날, ChatGPT가 세상에 나옵니다.
연사를 마무리 하고 숙소로 돌아간 날, 텔레그램 방은 'ChatGPT'에 난리가 납니다.
코드를 달라고 하면 코드를 주고, 숙제를 풀어달라고 하면 숙제를 풀어준다는 툴이라고 합니다.
지금 기준에선 개 멍청한 툴이지만, 어느 정도 미친 수준의 툴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당시 회사 슈퍼바이저와 한 2시간 동안 파이썬 기반으로 엑셀을 읽는 코드를 작성을 했는데, 그걸 단 5분 만에 만들어준 게, 정말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들어줍니다.
지금 o3가 나온 시장에서, GPT3은 그냥 그런 툴이였지만 전 그 수준이었어도 저에겐 엄청난 포텐셜을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 동아리를 만들기 전에, NFT를 하면서 만난 모아나의 공고를 통해 BetaAI 1기를 참여하며, 실질적인 툴을 만들어보자 라는 신념 아래 일명 'BetaAI Tunes'라고 유튜브 채널을 소소하게 만듭니다. 저 혼자 했다면 절대로 못할 프로젝트였지만, GPT를 통해서 이 정도 능력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어, 해당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제 회사 생활을 크게 변화게 해줄 덱스터 2048이라는 동아리를 만듭니다.
원래 이름을 계속 projectDMC로 할까 하다가, 게임 2048을 하면서 괜히 2048이 기억이 나 '덱스터가 2048년도에는 어떻게 일을 해야할까?' 라는 주제로 함께 동아리를 만듭니다. MBTI I여서 막 여기저기 영업하기에는 부끄러웠지만, 그 흔하게 이야기하는 'Comfort Zone'을 넘어서기 위해 영업을 하며 동아리를 성공적으로 만듭니다.
3. 코디네이터 -> 퇴사
사실 여기까지 왔다보니, 어느 정도 AI에 엄청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에는 뉴스레터가 나갔으며, 단순하게 'GPT가 세상을 바꿀 거예요'에서 논문도 보며, 오픈소스도 깔며, 영화과 출신인 녀석이 별거 다 해봅니다. GPU도 빌려가면서 정말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본 거 같습니다. 동아리의 힘을 빌려 민아 님을 2번 회사에 강사로 초청을, 킵콴님을, 그리고 성헌 AKA 달토 님을 회사에 불러 강의를 진행하곤 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아 ㅋㅋ AI하면 승오 님이지' 하면서 개인적으로 연락도 많이 오곤 했습니다. 지금이 돼서야 제 부탁을 들어준 민아 님, 콴님, 성헌님에게 무한한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회사를 퇴사해서 지금은 회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못 이야기하지만, 제 동아리 활동으로 인해 회사에서도 저에게 많은 기회를 줬습니다.
그 기회를 주신 만큼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다만, 입사한 지 이제 3년 반이 된 코디네이터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저도 사회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바꾼다는 거는 큰 벽으로 느꼈습니다. 거기에 저도 나이 30대가 되기 전에 한번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창업을 25년도에는 꼭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한 상황에, 좋은 기회가 와서 젋은거 하나 믿고 나가보려고 합니다.
1271일간의 덱스터 생활의 끝으로 제 덱스터 생활 일부분이 되었던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와, 저의 부족함으로 끼친 민폐의 두 가지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퇴사를 합니다. '내가 짱이였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정말 지난 3년 반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부족했던 저의 회사 생활에 도움을 주신 사람에게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창업을 한 것은 아니고, 이제 초기 팀 빌딩을 하는 AI + VFX를 하는 회사로 들어갑니다. 이 업계 특성상 뭐 하는 회산지,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는 말을 못 하지만, 곧 결과물로 찾아볼 수 있게 믿고 나가봅니다.
감사했습니다.
4. 2048
회사를 나오기 전에, 제 동아리는 이제 공식적으로 커뮤니티화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거진 1년간, 저의 제일 큰 도움을 주는 거는 오픈소스 커뮤니티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AI의 발전이 만약에 다 Closed, 또는 큰 금액대를 가진 구독제를 유지를 했다면 지금의 o3 모델은 없었고, AI의 발전 속도를 촉진시키는 건 '오픈소스'였고, 저의 능력도 오픈소스로 인해 많은걸 배우며 발전했습니다.
다만, 국내 VFX 산업에선 오픈소스를 사용하는 방법도 잘 모르며, 심지어 모 업체들은 오픈소스를 베껴서 공지를 하는 방향까지 보곤 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불을 발견을 했다고 불을 자신만의 발명품이다!라고 말하는 수준인데, 그거보다 더 성숙한 VFX + AI 발전을 위해 해당 동아리를 오픈된 방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본인이 VFX 산업에 AI기술로 기생이라도 할 수 있다면 들어오셔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저도 최대한 많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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